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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뚱냥이/인문, 사회, 문화, 종교

(2023 #54) 보이지 않는 군대 | 맥스 부트 지음, 문상준 / 조상근 옮김

by 뚱냥아빠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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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군대

군사사학의 대가(大家)인 맥스 부트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비정규전의 역사를 연구하여 탄생시킨 역이다. 비정규전 5천년의 교훈을 통해 세계화된 21세기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양상이

www.aladin.co.kr

책을 보는 순간, 페이지의 압박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여는 순간 멈출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고대 사회부터 최근까지 게릴라, 테러 전쟁에 대한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만큼 방대하고, 내용도 많다.

 

대한민국은 지금 휴전 중이다.

아마 전 세계에서 전쟁에 가장 가까운 나라일 수 있다.

하지만, 상당히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우리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그렇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또 우리에게 언젠가는 닥칠 수 있는 문제라 생각이 든다.

 

아마도 북한과의 전쟁이 다시 닥치에 되면

어쩌면 지난번과 같은 전면전이 아닌... 이런 게릴라전, 테러전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또 반대로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무너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남은 북한 사람들이 태러범 또는 게릴라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게 만들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릴라전은 약자의 상징과도 같다.

전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게릴라 전을 펼치는 것일 것이다.

그런 만큼...

왜 이 게릴라전을 펼치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p105

고대 로마부터 중세 중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를 공격했던 수많은 침략자들의 성공을 가리켜 한 역사가는 '유목민의 역설'이라 부른다. 휴 케네디는 "전쟁의 역사에서 군사적으로 우세한 국가들은 대체로 부유하고 가장 발전된 행정 체계를 갖춘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아카드 시대 당시 유목민들은 국가나 행정조직이 없고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문명 생황의 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는데도 훨씬 부강하고 진보된 제국을 무너뜨렸다."라고 주장했다.

케네디는 이러한 역설을 설명하면서 필자가 앞으로 언급한 많은 유목민들이 가진 국사적 이점들을 그 이유로 들었다. 첫 번째, 유목민들은 적보다 훨씬 기동력이 뛰어났고, 거친 환경에서도 치중대 없이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유목 사회에서 모든 남성은 전사였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정착 사회보다 더 높은 비율로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훈족, 흉노족, 몽골족과 같은 유목민들 다수는 마상궁술과 같이 적에게 잘 잘려지지도 않은 전투기술이 대단히 뛰어났다. 네 번째, 유목사회에서 "지도자는 전투와 사냥에 필요한 기술과 지혜가 뛰어난 자가 선발 되었다." 이와 반대로, 많은 정착사회들은 군사적 식견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기초하여 군사령관을 임명했다. 마지막 다선 번째 이점은 유목민들은 도시, 농작물, 또는 방어해야 할 고정 목표물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로 인해 그들을 저지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목민들이 수많은 전투에서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적들을 능가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p106

'유목민의 역설'은 곧 약자가 어떻게 강자를 이길 수 있는가라는 게릴라의 역설인 셈이다. 그 해답은 기동과 기습을 중요시하고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해 강국이 이로 인한 모든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p168

스페인 성직자들의 입장에서는 나폴레옹이 그리스도의 적이었고, 나폴레옹의 장군들은 '사탄의 사자'였으며, 그들의 부하들을 죽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었다. "반란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 국민이 인정하는 반란의 타당성"은 반란군의 편이었다.

 

p221

미래의 혁명은 대부분 좌우익을 막론하고 방법과 신념에 있어서 훨씬 더 극단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후 반란군 세대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선전을 강력한 전쟁문기로 사용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디어 전쟁'이 자신의 전체 전투의 90%를 차지했다고 선언했듯이 선전의 중요성은 아후로 차츰 커졌다. 19세기에 선전이 전쟁에서 차지한 비중은 오늘날만큼은 아니었지만 19세기 이전에 발생했던 비정치적인 게릴라전의 경우보다는 훨씬 더 높았다.

 

p241

북미 인디언들은 뛰어난 매복 전술에도 불구하고 17세기와 18세기 동부해안을 따라 벌어진 '삼림 전쟁'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결과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1622년 제임스타운에서 전멸의 위기에 놓인 것은 북미 인디언이 아닌 식민지인들이었다. 하지만 왜 북미 인디언들은 결국 패배했을까? 그것은 두 가지 치명적인 부족 때문이었다. 하나는 인구의 부족이었고, 다른 하나는 단합의 부족이었다.

 

p334

제국주의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파괴의 씨앗을 퍼뜨렸다. 서구 행정가들은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서구 교리를 널리 퍼뜨리는 학교를 설립하고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1920년대부터 그들의 통치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을 자극했다. 서양인들은 사상뿐 아니라 무기도 전파했다. 유럽인들은 TNT부터 AK-47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무기를 만들어 전 세계에 배포함으로써 20세기에 유럽인의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세력이 이전의 반란세력들보다 훨씬 더 잘 무장할 수 있도록 도운 셈이었다.

 

p345

가장 오랜 전쟁 형태인 게릴라전과는 달리 테러리즘은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테러리즘은 파괴적이며 휴대 가능한 무기, 대중매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세속적인 이데올로기, 이 네 가지 현상의 확산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p527

게릴라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게릴라의 공격을 받고 있는 정부의 통찰력과 의지가 부족해야 함은 물론이고 외부 지원도 필요하다. 중국에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중국의 내전은 전후 반란군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p604

템플러는 동적 전쟁보다는 정치적 전쟁에 치중함으로써 대반란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종종 "무력으로 해결이 가능한 것은 문제의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이 나라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답은 정글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데 있다"라고 선언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p608

영국이 말라야에서 성공한 반면 프랑스가 인근 인도차이나에서 실패한 이유를 살펴볼 때는 말라야가 우호국인 태국과 접한 반도국이었고 베트남은 확실히 비우호적인 중화인민공화국과 긴 지상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란군을 외부 지원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은 모든 대반란전에서 아주 중요한 요인이며, 인도차이나보다 말라야에서 달성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친펭은 중국이나 소련으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고 부하들은 중화기도 없었으며 심지어 소화기 탄약조차도 부족했다.

또한 반란이 항상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화교들에게만 국한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영국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말레이 국민 대다수의 감정에 호소하는 데 더 집중했다면 영국의 승리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보수적인 무슬림 농부인 말레이인은 영국과 동맹을 맺은 세습 술탄에게 대대로 충성했다.

또한 영국의 전쟁 노력은 뜻밖의 행운으로 이득을 보게 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말라야에서 생산되는 주석과 고무를 포함한 상품의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상승했고, 그로 인해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사회 서비스에 대한 지출이 증가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 이는 결과적으로 게릴라들의 유혹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의 프랑스군 사령관이 사용한 결국에는 자멸을 부르는 강경한 진술을 거부하고 적절한 수준의 무력을 사용했던 해럴드 브릭스와 제럴드 템플러라는 선각자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p614

물론 상대적으로 적은 손실을 입은 이유는 영국군이 맞닥뜨린 반대판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최소 병력 투입 접근방법으로 프랑스군이 최대 병력을 동원해 이룬 것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영국군이 대반란전의 정치적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전에 고대 메소포타이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국들은 일반적으로 두둑한 금전적 보상을 받아야 협력하는 소수 사회지도층을 제외한 '현지 주민'은 거의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충분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자유주위,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언론 매체(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의 확산으로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현대 사회에서 정권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자생적이고 가급적 민주적이어야 했다.

 

p649

미국의 국내 상황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기 없는 전쟁과 징벙으로 인해 대학 캠퍼스에서 이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존슨 행정부는 주로 징집병들에 의존함으로써 로마, 중국, 영국, 프랑스 제국이 배운 교훈을 무시하고 있었다.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반란 진압작전은 일반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우며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래 지속되므로 집으로 돌아가 사회 불안을 일으킬 것이 확실한 열성적이지 않은 징집병들은 작전에 투입하는 것보다는 매력적이지 못한 임무에 자원한 직업군인들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나았다.

 

p786

러시아의 체첸 반란 진압과 몇 년 후 발생한 스리랑카의 타밀 호랑이 반란 진압 성공 사례는 21세기에도 레바논이나 프랑스에서 이스라엘이나 알제리가 전혀 확보하지 못한 실질적인 정당성을 확보한 반란군이 세계 여론에 무관심한 채로 국내 활동에만 전념하면 폭력적인 반란 진압이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p807

9.11테러 이전의 테러리스트들은 대규모 민간인 사망을 초래하는 테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테러는 일반적으로 자제했다. 테러 분석가 브라이언 젠킨스가 1970년대에 썼듯이, "테러는 연극이고,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죽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알카에다와 다른 이슬람 단체들은 이 격언을 무시함으로써 조직에 대한 지지를 잃은 대가를 치렀다. 체첸 반란군은 이에 대한 적절한 사례를 제시했다. 체첸 반란군이 2002년 169명이 사앙한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과 2004년 331명이 사망한(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 북오세티아 베슬란 학교 인질극을 벌이고 나자 국내외의 동정 여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p843

이러한 교훈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중요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끊임없이 거듭되어온 불변의 상수와도 같은 게릴라전이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게릴라전은 어느 한쪽이 너무 약해서 공개적인 전투에서 상대방에 맞서기 어려울 때 모든 문화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투의 한 형태다. 이러한 전쟁수행방식이 조만간 구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미래에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할 만한 이유가 여전히 존재한다. 만약 일부 저항세력이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를 획득한다면 보병 분대 규모의 테러 조직이라도 정규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파괴력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이것은 슬프게도 공상과학 세계의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게릴라전은 5천년 세계사에서 용납되지 않는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기술적 비약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게릴라들이 과거에 성공적으로 해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세계의 강대국들을 전장에서 꺾고 굴욕감을 안겨줄 것이라는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브루나이와 슈미트의 발차취를 따라가는 군인들은 필연적으로 비정규전이라는 가마솥에 빠지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p845

[시사점]

1. 게릴라전은 유사 이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효곽가 큰 전쟁의 형태였다.

2. 게릴라전은 '동양의 전쟁 방식'이 아니라 약자의 보편적인 전쟁 방식이다.

3. 게릴라전은 과소평가되기도 하고 과대평가되기도 했다.

4. 1945년 이후로 반란군의 성공 확률은 높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반란군의 대부분은 패배하고 있다.

5. 지난 200년간 게릴라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은 바로 여론 조성이다.

6. 정규전 전술은 비정규전 위협에 효과가 없다.

7. 적어도 외국에서 대규모 테러를 자행하고 성공한 반란군은 거의 없다.

8. 주민 중심의 대반란전은 종종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9. 정당성 확립은 반란전이나 대반란전의 성공을 위해 아주 중요하지만, 현대에는 외국의 단체나 정부가 달성하기 어렵다.

10. 반란은 다부분 오래 지속되며, 신속하게 승리를 달성하려는 시도는 역효과를 낳는다.

11. 게릴라는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작전할 때, 특히 정규군 부대와 함께 작전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12. 정규전처럼 게릴라전에서도 과학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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