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는 뚱냥이/인문, 사회, 문화, 종교

(2023 #44) 제자입니까? |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by 뚱냥아빠 2023. 4. 25.
반응형

 

 

제자입니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제자는 코스 웍(course work), 세미나, 성경공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훈련은 방법이고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 제자의 삶이냐, 무엇이 제자의 삶을 떠받쳐주느냐

www.aladin.co.kr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 파트는 개인, 두번째 파트는 교회 차원의 제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번째 파트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종으로서 살고 있는가? 내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못 할 거 같다.

"내가 복음"에 빠져 나 역시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을 원하신다.

나의 집, 재산, 건강, 가족 심지어 나의 생명 까지도.

이 모든 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로 선택한 이후부터 내 권리는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가 쓸 수 있도록 허용해 주신 것일 뿐.

그뿐인 것이다. 내 권리와 내 지분은 아무것도 없다.

그분의 피 값으로 나를 사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드니 솔직히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와 선교와 각종 교회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하는 것의 차원이 아니다.

 

다음으로 교회에서의 제자도에 관련된 부분은

회사와 가정에서의 조직을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교회서는 그러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서 100명짜리 조직이든, 1000명짜리든, 10000명짜리든 그 원리를 다 동일하다.

최고 리더쉽이 있고, 그 리더쉽 아래에 있는 핵심 인력 3~4, 많게는 10여명을 관리 한다.

관리라 함은 자신의 철학과 사고를 주입하고, 그로 인하여 나와 같이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밑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 오는 것이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 예시로 나왔던 거대 가정 역시 첫번째로 할머니가 그 자손들만 돌본 것이지, 그 아래 아래 자손들까지 돌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회는 현대의 목사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사람들을 모아서 관리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고아원 같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단지 12명의 제자만을 양육 하셨다.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마시며 그렇게 3년을 함께 살며 그 삶을 본으로 보이셨다.

이게 제자도를 가르치는 핵심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먼저 목사가 핵심되는 몇명에게 그 제자도의 삶을 보이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하면서 계속 연결해 나가면서 그 제자된 삶을 눈으로 보고 함께 경험하며 배워 가는 것이다.

종파와 인종을 뛰어 넘으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정말 나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일까? 라는 생각 들이 들었다.

정말 괜찮은 책이다!

 


p27

주님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구원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기 때문이다.

 

p31

어떤 특정한 교리나 공인된 사실에 동조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구원받는다. 예쑤님은 초지 일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어디서, 얼마만큼 우리에게 보상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단지 명령하실 뿐이다.

구원은 명령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형벌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회개하라는 것이 일종의 권유일 뿐이라면 형벌은 따를 이유가 없다.

 

p35

"먹기 위해서 일하고, 또 일하기 위해서 먹고....."

이것은 삶이 아니다. 그저 숨만 쉬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인생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내 인생의 목적은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p43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람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워지는"(골 1:13) 것이다. 흑암과 아들의 나라, 이렇게 두 나라 모두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구원은,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새 나라에서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다 할 수는 없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일원일 뿐, 왕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분이 다스리시고, 우리는 그분의 계획과 소원을 따라 산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별되는 특징(distinctives)은 고작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마시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 그분이 그 나라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p57

노예여, 무슨 권리가 있다고? 당신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셨고, 당신의 모든 시간의 주인이시다.

 

p64

사랑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증거가 우리가 어떻게 전도하느냐, 담배를 피우느냐 안 피우느냐 혹은 그 밖의 다른 많은 일들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의 모범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랑만큼 중요하지 않다. 만일 지난 여러 해 동안 금연에 대해 강조한 것만큼 사랑을 강조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사랑은, 그원받았는지 아닌지 가리는 시금석이다.

사도 요한의 말에 귀 기울여 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하나님께로서 나왔는지 알고 싶은가? 여기 너무도 쉬운 방법이 있지 않은가?

 

p77

선행은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선행'이란, 글자 그대로 "착한 일"이다. 일이라는 말에 또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다. 지갑을 열어서 착한 일을 해야 한다.

 

p156

그런데 오늘날은 모두 거꾸로 되었다. 성공한 목사란 아주 오랫동안 한 교회에서 사역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초대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제자들을 빨리, 그리고 잘 양욱해 놓고 새로운 과업을 향해서 훌훌 떠나는 사람이 훌륭한 사역자였다. 교인들로부터 쫓겨났던 것이 아니다. 영적 자녀들에게 교회를 맡기고 다른 곳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안디옥으로 되돌아왔듯이 그는 언제고 본래 사역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p162

만약 내가 그 할머니에게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모두 다 잘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습니까?"라고 물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어떻게 다 키웠겠어요. 나는 여섯 애만 키웠을 뿐이다."

 

p177

복종 없는 양육은 있을 수 없다. ~ 중략 ~ 우리 네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내게 복종하는 것뿐이다.

 

p179

제자도에서 두 번째 법칙은, "복종 없이는 복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 자기 제자에게 명령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 스승은 제자를 책망한다. 그러면 그를 책망하는 사람은 누구인까? 그 단계 단계에 거맞는 복종이 없다면 진정한 복종은 없는 것이다.

 

p184

예수님은 "죄인들이여 교회로 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믿는 자여, 세상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p208

제자도는 목사들과 더불어 시작되어야 한다. 만약 목사들이 전 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삶을 나누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한 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의 장로로 여기지 않는다면, 결코 사람들을 제자로 삼을 수 없다. 제자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제자가 '되어야'한다. 제자도는 교설이나 강의 이상으로, 제자도가 곧 삶이다. 목사들은 고리타분한 설교를 버려야 하고, 그것들로 제자를 삼겠다는 생각을 집어치워야 한다. 옛날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