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한 3주간은 본 거 같다.
책 자체가 그리 긴 책은 아니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교회에서 동성애 반대를 하는데 있어서...
왜 그럴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동성애가 특별히 더 나쁜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음란, 간음, 거짓, 강도 등등... 성경에 죄라 말씀한 것들보다 이것이 더 큰 죄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죄를 이야기 할 때 별 귀를 기울여지지가 않았던 거 같다.
이 책에서도 역시 서두에 내가 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도 동성애가 특별히 다른 어떤 죄보다 훨씬 더 나쁜 죄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성애란 것은 하나의 겉으로 드러난 열매일 뿐이고, 그 안에는 더 깊은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이 세계관 전쟁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 시대때부터 있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신본주의"와,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간 세계관 대결이다.
결국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신본주의에서 내가 신이 되고, 내가 중심이 되려 하는 인본주의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인본주의의 파급은 점점 확대된다.
얼핏 생각하면 굉장히 멋있고, 당연하 말인 거 같지만...
사람이 주인이 되면 어떤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들이 점점 상대화가 되어 버리고,
결국엔 성별에 대한 선택권도, 가정을 이루는 단위도, 성행위에 대한 대상도 결국 각 사람의 선택이 되어 버린다.
이런 선택은 창조주의 창조 질서를 하나둘 씩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렇게 무너진 창조 질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많은 혼란과 혼돈으로 밀어넣게 된다.
동성애란 그 세계관 전쟁에 있어서 나온 하나의 열매이다.
그런 열매가 자라기 위하여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인본주의적 교육과 문화 속에 젖어 들어 자라고 있다.
내 삶의 선택권은 나에게 있고, 이것이 결국 현재 법제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란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크리스천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점점 어려운 시기가 오고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정말 종말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내야 할 지... 많은 자성과 다짐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룩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p27
물론 동성애가 성경에서 지적하고 있는 유일한 죄도 아니고 가장 큰 죄라고 할 수도 없다. 때로는 거짓말, 탐욕, 시기, 지리투와 같은 죄들이 동성애보다 더 심각한 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보다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우월한 위치에서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죄의 모양이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동성애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죄가 아닌 사랑으로 둔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p35
성경에서 정의하고 있는 결혼의 정답 대신에 자꾸 오답을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행위가 불의와 죄악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르지 않고 각자의 소견에 따라 살고 싶은 대로 사는 행위가 불의와 죄악이다.
p63
눈이 밝아졌다. 이것은 반어법이다. 하나님에 대한 눈은 어두워지고 내 눈이 밝아진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에서 나 중심적 세계관으로 변화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 모든 것의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최종적인 판단자가 되었다. 그 결과 선이 악으로 간주되고, 악은 선으로 둔갑하여 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악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선이라는 이름으로.
p71
세계관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핵심 전장은 역시 교육현장이다. 학교 교육을 통해 인본주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윤리관이 우리 자녀들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다.
p159
요즈음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공격과 조롱을 받고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교회는 세상의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세상이 교회를 좋아하고 칭찬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교회가 교회다울수록 공격은 오히려 더욱 거세질 것이다.
초대교회가 그토록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고 세상의 공격을 받았던 이유가 교회답지 못했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초대교회가 갖고 있던 교회다운 모습 때문이었다. ~ 중략 ~ 교회의 본질이 세상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161
하나님의 진리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공격을 받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더 강력하게 성장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진리를 타협하거나 안전을 추구하는 교회는 반드시 점진적으로 쇠퇴하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현재 이와 같은 기로에 서 있다.
p234
우리는 복음을 이와 같은 문화적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켜 공적인 진리의 지위로 회복시켜야 한다. 성경적 진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종교적 진리라는 사적 영역에 가두어 두도록 하는 성과 속의 분리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삶을 예배 및 개인의 경건 생활과 같은 거룩한 영역과 과학, 정치, 경제 등 공적인 영역을 포괄하는 세속적 영역으로 나누어 양자가 서로 분리 또는 대립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배격해야 한다.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복음의 능력이 오늘날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 걸림돌이다. 이와 같은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기독교 세계관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한국 교회의 숙제이자 사명이다.
p242
오늘날 기독교가 당명한 위기의 본질은 우주 보편적인 기독교의 진리가 파편화 또는 이원화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관점의 회심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관점의 이원화가 삶의 이원화를 낳았다. 교회 안에서 따르는 진리가 따로 있고, 세상에서 따르는 진리가 따로 있다.
p255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로부터 자유해지고, 가정이 가정폭력과 이혼의 아픔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열된 정신세계가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즉 교회와 세상이라는, 서로 다른 진리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서로 다른 기준이 다르시는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분열적인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통합해야 한다. 그런 후에 기독교 세계관을 토대로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p270
나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음란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불의를, 부정을, 탐욕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죄에 대한 분노와 죄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p299
매 주일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고 열정적으로 교회를 섬기면서도 세상에서 사기를 치고 음란물에 빠져 살 수 있었던 이유, 간통죄를 저지르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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