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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뚱냥이/인문, 사회, 문화, 종교

(2024 #38) 세 개의 전쟁 | 김정섭 지음

by 뚱냥아빠 2024.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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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전쟁 - 예스24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다김정섭 박사 7년 만의 신작지정학적 중견국인 한국으로선 국제정치의 향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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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말 재미 있다.

솔직히 서론을 읽었을 때에는... '이 책 끝까지 못 읽겠는데?' 라는 생각을 했는데,

본격적으로 책으로 들어가면 완전 빠져 든다.

 

그리고 이 책...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솔직히 우리 나라는 독립적 외교라 할 것이 없는 나라였다.

그러다 국력이 성장함에 따라 독립적 외교를 하려고 애쓰고 있고,

그 와중에 축적되지 않은 외교 역량으로 여러 실수도 하고는 있지만

점점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도 정치 지형에 따라 외교 노선에 대하여 주장하는 바가 극렬히 다르다.

각자의 논리를 들어보면 어느정도 일견이 있는 말들이긴 하나...

아직, 국내에 통일된 외교 노선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저자 역시 이 책에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시대는 신냉전이라고 하기도 하고,

자유주의와 권위주의간 대결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무튼!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밀착으로 인한 세계의 구도가 점점 변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 있다.

그 상황 속에서 여지껏 지정학적 변화에 있어 한반도가 아무 상관 없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한반도는 다시금 그 폭풍의 한 가운데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과연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어야 할까?

이러한 문제점과 고민에 대한 답을 풀어 내고자 이 책이 나왔다.

 

일단 한국 내에서조차 이런 중러북 vs. 자유진영이란 진영 논리로 상대국을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밝히고 있다.

강대국들은 언제든지 본인들의 이익에 따라 말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중진국인 우리가 그들의 말을 맞춰 가다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결적인 논조가 절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 정부에서는 중국에 너무 등한시 하고 있다.

그나마 얼마 전에 한일중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의미가 있다.

지금은 체제경쟁이 아닌, 한 체제 안에서의 경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의 시각은 우리의 시각이 아닌, 결국 이 판을 바꿀 수 있는 강대국들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자 주장하는 바이다.

 

여담으로...

1부의 태평양전쟁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일본이 연속된 3번의 판단 미스가 아니었음.. 여지껏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과 함께 정말 대한민국의 독립은 하나님의 은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막판... 일본의 전쟁 초반의 기세를 잃고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는 와중에... 대한민국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변절이 일어났다.

마지막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세계 정세의 판을 못 읽어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이 세계 정세를 제대로 봤다면.. 그런 아쉬운 결정들을 했을까? 하면서... 

이런 거대 담론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 아닌, 어쩌면 나의 생활과 선택에 있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p50

일본 일각에서는 구미 열강과의 전쟁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침략 전쟁과는 구분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중국, 한반도, 동남아시아에 대한 전쟁은 침략으로 인정하면서도,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의 전쟁은 기존 제국주의와 아시아 신흥 강국 간에 일어난 식민지 재분할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관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은 제국주의 상호 간의 전쟁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사고로 연결된다. 즉, 원폭과 무차별 도시 폭격을 퍼부은 미국의 전쟁 범죄는 외면하면서 일본만 단죄를 당한다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p51

일본은 굴욕적 패망과 피점령으로 끝난 전쟁의 길로 들어섰다. 이길 수 없는 전쟁, 이 위험하고 절망적인 선택의 순간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여기엔 세 가지 운명적 선택이 있었다. 먼저 1940년 9월, 독일/이탈리아와 맺은 삼국동맹이 일본의 진로를 결정지은 사건이었다. 1차 대전까지 승자 클럽에 가담했던 일본이 이제는 정반대로 패전국 진영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역사적 선택을 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둘째, 1941년 7월에 행해진 프랑스령 남부 인도차이나 진주 역시 일본이 저지른 치명적 실수였다. 남방작적 확대가 갖는 전략적 민감성을 과소평가한 이 결정은 미국의 대일 전면 금수 조치를 불러일으켰고, 이제 미/일 충돌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마지막 선택은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 공격 결정이었다. 미/일 교섭이 결렬되고 일본은 심각한 내부 진통 끝에 결국 미국과 전면전에 돌입하는 운명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p86

트루먼은 훗날 원자탄 투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일말의 주저함도, 밤잠을 설치는 고민도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어떻게 민간인 대량 살상을 가져오는 원자탄을 투하하면서 이럴 수 있었다는 것일까? 인과응보의 논리, 조기 종전의 열망 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윤리적 문제를 둘러싼 고뇌와 번민이 정말로 없었을까? 투루먼의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탄 투하 이전에 이미 민간인 대량 살상이 미국과 연합국이 채택한 전쟁 수행 방식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적의 사기를 꺾고 전쟁 수행의 잠재력을 분쇄하기 위해 눈앞의 탱크나 보병이 아니라 후방의 공장과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타격하는 것이 전략의 요체였던 것이다.

 

p103

2차 대전은 인도주의적 호소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이렇게 야만적인 민간인 살상으로 물들었다. 도시 폭격은 전쟁 수행의 불가분한 요소로 간주되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을 불가피하다고 여겨졌다. 더 나아가 도시 자체를 마비시키고 불태우는 것이 작전목표로 수용되었다. 이 점은 독일이나 연합국이나 차이가 없었다.

 

p108

'최소한'의 수준으로 일본 경제의 기초를 약화시킨다는 초기의 징벌적 기조와는 완전히 다른 방침이었다. 이때부터 대일 정책은 여러 방면에서 수정되기 시작했다. 먼저 공직에서 쫓겨났던 구세력들의 복귀가 허용되었다. 전범으로 재판받고 형무소에 갇혀 있던 인사들까지 풀려나 복권되었다. 1952년 10월 총선거에서 중의원 의석을 차지한 이들 중 42%가 공직 추방에서 해제된 구세력 인사들이었다.

 

p110

결과적으로 일본은 전쟁 책임 국가로서 응당 치러야 할 정치적, 법적, 도덕적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전범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고 국가 전체가 전쟁 책임 문제를 감당했던 독일과는 다른 경로를 밟은 셈이었다.

 

p114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와 서태평양 일대까지 아우르는 제국적 구상을 펼쳐보았던 나라다. 청나라와 러시아는 물론 독일, 영국, 미국 등 당대 강대국을 상대로 지정학적 게임을 벌이며 전쟁까지 불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보다 앞서 인도, 태평양 전략을 고안해 낸 것만 보더라도 일본이 얼마나 지정학적 사고에 능한지 알 수 있다. 어쩌면 패전 후 반세기동안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안주했던 것이 오히려 예외적 기간일지 모른다. 동아시아 세력균형이 흔들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맞아 일본은 이제 경제 대국, 평민 대국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 역량까지 갖춘 정치 대국을 추구해 갈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강국이 될 잠재력이 있는데 이를 포기하고 스스로 제어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제 일본의 지정학적 역할을 상수로 상정하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그려야 할 때가 되었다.

 

p148

고르바초프, 옐친 시기의 혼란과 모멸을 경험한 이후 러시아 엘리트들은 다시 지정학게 주목했다. ~ 중략 ~ 

무엇보다 두긴은 탈냉전 전후 러시아가 범한 외교적 실수에 대해 통렬히 비판했다. 고르바초프가 아무리 신사고 외교를 추진해도, 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하고 동독에서 철수해도, 미국과 유럽은 결코 러시아를 서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강대국은 언제나 지정학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다른 강대국을 대하는데, 당시 소련은 미국과 나토를 잠재적인 적으로 보지 못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굴욕적으로 경험한 나토의 동진과 미국 주도 일극 질서의 도래도 결국은 지정학적 관심을 상실한 러시아의 외교 실책이 부른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p152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을 주권과 영토 존엄성이라는 국제규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p162

우크라이나전쟁을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 장악에 대한 반격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 중략 ~ 다시 말해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그간 러시아를 충분히 자극하고 도발했다고 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전쟁을 '이유 없는'침략 전쟁으로 보는 서방 주류의 시각과는 정반대 입장이다.

 

p179

남반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잘잘못을 따져 어느 한 편을 편드는 데 관심이 없다. 규칙 기반 질서 자체에 깊은 회의감을 갖고 있는 이들은 미국과 유럽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p200

우크라이나전쟁에서 휴전 협상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렵겠지만, 시작된 이후에도 협상 과정은 치열한 전투를 동반할 것이고 결코 손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 중략 ~ 결국 핵심 질문은 이렇다. 얼마만큼 더 버텨야 더 이상의 전투가 무의미하다는 게 모든 당사자에게 명확해질까?

 

p209

우크라이나전쟁이나 러시아 외교의 패권적 측면을 모두 푸틴 한 사람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러시아라는 국가에 대한 서방의 몰이해에 불과하다고 현실주의자들은 비판한다. ~ 중략 ~ 소련 제국의 붕괴, 탈냉전 이후 체제 전환 과정에서 러시아는 치욕과 모멸감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때 러시아는 너무 약했기 때문에 반발할 수 없었다. 나토의 발칸 개입,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색깔혁명, 시리아의 친러 아사드 정권 퇴진 요구 등 서방이 러시아의 입장을 무시하고 독주할 때 모스크바는 거의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는 제국 붕괴 직후 방황하던 혼란기를 지났고,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로 불렸던 힘의 절정기에서 내려왔다. ~ 중략 ~ 즉 러시아의 공세적인 대외 행동은 푸틴 개인의 신념뿐 아니라 러시아 엘리트들과 국민들이 공통으로 품고 있는 강대국 정서와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p307

동서 냉전이 열전으로 폭발하지 않았던 것은 미/소 진영 간에 분명한 세력권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동/서독이 그 경계선이었고, 동아시아에선 한반도 허리 위로 냉전의 분단선이 그어져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 동서 양 끝에서 서방과 공산주의 진영은 각자 어디까지가 자신의 영억이고, 어느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미/중 경쟁이 위험한 것은 이 경계선이 분명치 않다는 데에 있다.

 

p333

각대국 간 전쟁은 바로 세력권의 경계가 외교로 타협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영/미의 세력권에 무모하게 도전한 경우이고, 우크라이나전쟁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러시아가 갖는 지정학적 지분에 대한 이견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대만사태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새력균형에서 시금석이 될 요충을 두고 물러서지 않는다는 게 사안의 본질이다.

 

p334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지정학이 귀환했다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지정학은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DNA에 언제나 존재했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p337

진영대결의 흐름 속에서도 현안마다 많은 국가들의 선택이 엇갈리고 각자도생의 외교가 판치는 것은 현재의 미/중 경쟁이 냉전 시대 미/소 경쟁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소 냉전은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시스템이 존재론적 위협을 걸고 대립한 세상이었다. 반면에 현재의 미/중 경쟁은 단일 시스템 내에서의 경쟁이다. 상호의존의 세계에서 디커플링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다만 상대의 취약성을 공략함으로써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고자 하는 패권 경쟁, 세력권 경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 투쟁이 걸려 있는 제로섬 게임처럼, 선택이 불가피한 이분법적 대결인 것처럼 세상을 보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 잘못된 상황 인식은 그릇된 정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신냉전 프레임에 갇히면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고, 안 그래도 협소해지고 있는 한국 외교의 자율적 공간을 우리 스스로 더욱 좁힐 위험이 있다. 많은 나라들이 미/중 경쟁의 압력 속에서도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기민하고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현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신녕전 비유를 '지적 게으름'의 소산이라고 일갈한 전 싱가포르 외무차관의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자기충족적 덫이 될 위험이 있는 신냉전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혼돈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우리 외교의 출발점일 것이다.

 

p341

결국 도전과 위협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설정하되 균형감각과 신중함을 갖추는 것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대외 전략의 요체가 될 것이다. 특히 지정학적 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대만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p353

국제정치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안보딜레마다. 적대국 사이에선 어느 한 국가의 안보 증진 노력이 상대의 안보를 저해하는 악순환 사이클이 작동한다. 공격 능력과 의도의 불확실성이 합쳐지면 두려움과 불안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제정치에서 불신, 경쟁, 충돌은 다분히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선한 국가와 악한 국가가 따로 있지 않고,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국가는 국제정치 문법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만 강대국은 틀을 깰 수 있는 국가이고 약소국은 적응해야 하는 처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세계질서가 요동치고 있고, 동북아시아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한미동맹의 보호 아래 안전을 보장받고, 중국의 성장에 올라타서 경제적 과실을 얻던 시대는 지나갔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강대국 외교의 시동을 걸고 있고, 우크라이나전쟁의 여파로 한/러 관계또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이다. 국제질서의 격변을 맞아 예민한 지정한적 감각과 능숙한 세력균형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 대한민국이 제국처럼 행동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국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은 갖출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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