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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뚱냥이/인문, 사회, 문화, 종교

(2023 #97) 연결된 위기 | 백승욱 지음

by 뚱냥아빠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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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위기

우리가 처한 제약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려는 두터운 노력의 산물이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이해로 무장한다면 상이한 역사 경로를 찾아낼 수 있을지에 관한 사고 실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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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너무나도 쉽게 일반화를 하곤 한다.

그렇게 일반화를 해야 복잡 다난한 이 세상에서 조금은 삶의 난이도가 낮아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일반화를 해도 되는 것이 있고, 일반화를 하면 큰일 나는 것이 있는데...

저자는 바로 후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세상은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특히나 대만과 한반도의 긴장감이 점점 더 고조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중동까지

세상은 다시금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을 신냉전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바로 이 "신냉전"이란 워딩이 잘못 됐다고 저자는 꼬집고 있다.

이렇게 신냉전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어느 한쪽에 우리를 결탁해야 하는 단순 선택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지금의 세계 정세의 변화와 그 영향도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신냉전이 아닌, 얄타체계의 해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찰국가들에 의하여 전 세계를 운영하고자 하였던 그 얄타체제...

그것이 무너져 내려서 사실, 지금 우리는 냉전 이전의 1,2차 세계 대전 시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이야하기 위하여 저자는 역사적 흐름을 이야기 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 그 속의 독일과 소련,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고,

또한 중국의 모택동부터 지금의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위로는 북한, 그리고 중국이 계속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할까? 사실 가당치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저자는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간, 대한민국과 북한이 힘을 합쳐 일본의 무장을 저지해 왔다면, 

이제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북한을 견제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보 없는 평화와 번영은 없다.

이 급변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살 길에 대하여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한 시점인 거 같다.

 


p70

다중적 안보위협으로 인해 최소한의 '공동지배-공동관리' 관념도 약화되며, 핵보유 강대국 중심으로 세계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EU같은 지역 통합조차 핵보유 강대국 대결 모델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처럼 국제질서의 최소한의 공조-합의가 무너지면서 강대국의 자국이익 중심주의가 부상하는 것이 얄타체제의 해체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질서의 공위기로 이어질 우려를 키울 수밖에 없다. 얄타체제의 해체는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지탱해온 세계질서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대체하는 더나은 세계질서의 틀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개별 국가들은 각자도생하려 하겠지만 그러기 ㅜ이해서는 스스로 강력한 자율성과 자생력을 갖추어야 한다. 제국적 규모의 핵보유 강대국들이 부상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며 이 과정에서 블록에 준하는 군사적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한 세력권을 넓혀갈 것이다. 미국 주도의 나토처럼 최대한의 참여국을 포함한 경우에는 당분간 우위가 유지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도전국가들은 세계적 군사력의 비대칭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으로 등장할 수 있겠지만, 그 귀결은 매우 위험한 또 다른 군사적 도전으로 끝날 수 있다. 미국 또한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중심국으로 체제대결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극체제의 자유주의 헤게모니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빠르게 국제정치의 현실주의를 수용해 변신할 수도 있다. 쇠퇴하는 헤게모니이면서도 자원의 과도한 집중에 힘입어 '과잉팽창'이 가능한 이례적 조건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였던 단극체제 아래 세계질서의 지속적, 자유주의적 팽창 전략이 결국 미국 쇠퇴를 급속하게 재촉할 수도 있고, 그 현실에 대한 국내적 반응이 급격하게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07

1946년 이후부터 계속 누적된 여러 사건들은 연쇄적으로 냉전을 고조시켰다. 터키와 이란 전후 통치 방식의 합의 결렬, 폴란드 정부 수립, 동유럽과 발칸 문제, 일본 점령 지배 방식의 변경, 조건반도 정세 변화, 마셜 플랜을 둘러싼 갈등과 뒤이은 베를린 봉쇄, 소련의 이탈과 코민포픔 수립,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트루먼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보고서 68호 계획 수립 등 일련의 상승 작용이 있었고, 결정타가 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p211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수립된 국제질서를 살펴보면 카이로 회담에서 얄타구상에 이르는 최초의 '4강' 구상과의 두 가지 차이가 발견된다. 하나는 최초 구상에 없던 프랑스가 '5강'에 들어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에는 '4강'에 포함되었던 장제스의 국민당이 밀려나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점차 부상해 결국 그 자리를 대체하는 데 이르렀다는 점이다. 두 차이점은 루스벨트의 '단일 세계주의'가 현실의 난점과 부딛히면서 '두 세계주의'로 변용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프랑스의 부상은 독일제국을 수많은 소국으로 해체하는 대신, 거대한 독일을 신속하게 산업적으로 부흥시키고자 한 결과로 등장한 작지 않은 변화였다. 마오쩌둥의 부상은 장제스를 포함시켜 4강 구도를 형성하려 했던 루스벨트의 계획이 현실이 될 수 없고 대신 아시아에서 미국의 냉전 전략 궤도수정이 발생한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역시 작지 않은 변화였다.

1945년 시점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자면 카이로회담에서 얄타회담까지 루스벨트에게 진영 대립은 핵심이 아니었으며, 한반도에서도 1946년 초까지 모스크바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미국에 의한 일본의 단독 점령이 필연적이었는지, 독일제국의 해체가 아니라 동서독 분단으로 가는 것이 필연적이었는지, 마셜플랜의 등장과 여기에서 소련의 배제가 필연적이었는지, 냉전의 동아시아 구상이 미리 준비된 것이었는지, 국민당이 아닌 공산당에 의한 중국 대륙의 장악이 필연적이었는지, 한반도 분단이 미리 준비된 것이었는지, 한국전쟁이 미리 북중소 사이에서 계획된 것이었는지 등에 대해 모두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관심인 동아시아에서 냉전 구도가 형성된 과정에 대해서도 '진영론적 필연성'보다는 '정세적 설명'을 통해 특이성을 규명하는 논의가 좀 더 필요할 것이다.

 

p231

얄타'구상'이 '냉전체제'로 귀결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은 중국혁명 때문에 얄타구상이 원래 궤도에서 이탈하며 전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p277

다른 변화가 없었다면 마오쩌둥의 모스크바 방문과 조약 체결 후 소련의 군사지원 아래 중국공산당의 대만 점령 작전이 개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1950년 1월 이후 소련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약속한 군사물자 지원을 계속 미루었고, 4월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대만 점령을 위한 중국공산당 지원에서 한국전쟁을 위한 북한 지원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 입장 전환에 대해 마오쩌둥은 자세한 설명을 전달받지 못했다. 소련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앞서도 설명했듯이, 동방의 '티토'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중국과 마오쩌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북한대로 전쟁 전부터 38선의 긴장 국면을 이용해 소련으로부터 대량의 현대식 무기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훈련된 부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에게는 대만 점령이 일차적으로 중요했고, 한국전쟁에 대해 군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준비가 부족해 전쟁 초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쟁을 신생 중국의 생존과 지정학적 위상 제고와 연관시키기 시작하면서 마오쩌둥은 전격적으로 입장을 바꾸고 참전 의사를 소련에 전달했다. 소련은 중국이 급작스레 참전 의사를 밝히자 그 근저에 '동방의 티토'가 되려는 저의가 있지는 않은지 의심한 탓에 연합군이 반격해 38선을 돌파한 이후에도 중국의 참전을 오랫동안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북한의 지원요청을 받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10월 초 참전 여부에 대한 놀나 끝에 10월 5일 정치국 회의에서 출병을 정식 결정하고, 중국 '인민지원군'은 10월 19일 압록강 국경을 넘었다. 마오쩌둥의 적극 개입 입장과 달리 당내에 부정적 입장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이 전쟁에 참여하는 대신 소련의 군사원조와 특히 공중 엄호를 중요한 조건으로 내걸었고, 스탈린은 중국의 의도를 지속적으로 의심했다. 소련은 얄타체제를 고수하면서 미국과 직접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동방에서 세력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국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로 북한이나 중국을 활용하는 것 역시 포기하기 어려웠다.

 

p298

누누이 강조했듯이, 얄타체제의 해체는 국가간 체계가 강대국들이 견제하고 충돌하던 2차 세계대전이나 1차 세계대전 시대로 회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신냉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데 냉전시대에는 대립을 통해 지속되던 특정한 세계질서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 이런 냉전의 시기와는 상이한 무질서의 시대에 돌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질서의 세계에서는 특히 제국적 규모를 배경으로 한 핵 강대국이 아니고서 생존이 어려워진다.

 

p317

시진핑 체제의 목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새로운 100년의 건설이다. 여기서 넘어서야 하는 과거 두 개의 굴욕이 중요해진다. 서구 제국주의에 패배한 아편전쟁의 굴욕으로 영국에 내준 홍콩과 동아시아 제국주의 일본에 패배한 청일전쟁의 굴욕으로 내준 대만이다. 이 두 곳은 더 이상 식민지는 아니지만 중국의 '실질적 지배'가 미치지 않는 땅이고, 미해결의 '식민과제'로 남아 있다고 할수 있다. 홍콩에서 일국양제의 과거 틀('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을 무너뜨리고 2019년 이후 '애국자가 홍콩을 통치한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이후 대만 문제 또한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2022~2023년 공인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은 이 굴욕 해소를 핵심 과제로 삼고 여기서 더 나아가 미중 대립에서 우세를 달성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 '조건부 연임'의 성격을 띤다.

 

p332

결국 향후 대일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한국 외교의 초점이 남북한 협력을 통해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자 하는 데 맞추어졌다면, 향후 초점은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 핵위협을 억제하는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떤 조건 아래에서 일본 군사 대국화의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관계 개선이 한중관계와 한미관계에서 압박카드로 사용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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